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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여행

이삼평의 흔적을 찾아서....

2023년 2월 1일 ~ 3일. 일본 규슈 이마리, 아리타, 다케오 등.... 

 

이삼평을 찾아가는 것은 숙제였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 가끔 끌려간 도공들이 일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말하긴 했지만, 그것은 우리의 입장이었고 일본인들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찾아가 추모라도 하고 싶었다.

부산에서 뉴카멜리아호를 타는 것은 다섯 번째이지 싶다. 배를 타고 일본을 방문한 횟수만 모두 8번정도 인 것 같다. 코로나이후의 첫 승선이었지만 익숙한 구조를 보면서 5인실 다다미방의 열쇠를 받아서, 준비해간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목욕탕에서 몸의 온도를 올리고 난후 부산을 출발하는 밤풍경을 감상한후 잠이 들었다. 잠자리에 누워 있으면 배의 흔들림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 했지만 중간 중간 잠이 께면서도 어느듯 후쿠오카 항에 도착하였다.

5시 일어나 다시 대욕장을 찾아서 씻고 하선 준비를 하였다. 까다로워진 검역절차로 인하여 730분 하선하였다. 배에 탄 사람은 모두 합쳐서 30명 남짓인 것 같았다. 몇해전 일본을 찾을 때 시끌벅적하던 풍경은 없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일본에 하선하였다. 부산항과 후쿠오카항을 잇는 항로를 카멜리아 라인이라 한다. 부산의 상징 꽃과 후쿠오카의 상징 꽃이 모두 동백꽃이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알고 있다. 오래전 뉴질랜드 오클랜드 타워에 오르기 위해서 매표를 할 때 매표를 하던 일본인 할아버지가 알려준 것이다. 그때 오클랜드, 부산, 후쿠오카가 서로 자매 결연을 맺고 있다고도 알려주면서, 멋진 트라이 앵글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배에 탄 사람이 적다 보니 하선이 시작된후 금방 모든 절차를 마칠수 있었다.

 

우리가 오늘 방문할 장소는 이마리와 아리타, 그리고 다케오를 거쳐서 우레시노를 방문할 예정이다. 교통편이 좀 복잡하다. 후쿠오카 버스 터미널에서 이마리행 버스를 타고, 이마리에서 다시 아리타로 기차로 이동하여 도보로 가미아리타로 가서, 다시 다케오로 기차를 타고 이동한후, 다시 버스를 타고 우레시노로 갈 것이다. 이런 교통편을 알아내는 것도 쉽진 않았지만, 구글이 알려준 내용이다. 대단하면서도 무서운 구글이다. 구글은 나의 동선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모두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배에서 내릴 때부터 미리 구매한 산큐버스패스 2일권을 사용하여 후쿠오카 역으로 이동하여 버스 터미널로 갔다. 산뷰패스 2일권은 국내에서 판매하는 곳이 적어서 구매에 애를 먹었다. 다행히 한 업체(큐슈디스커버리)에서 구매도 가능하고 택배로 보내주면서 미리 날짜 까지 찍어 보내주어서 구매할 수 있었다. 같이 가기로 한 한분이 여행을 취소하였지만, 다시 택배로 돌려주니 20% 정도 공제하고 일부 환불도 받을 수 있었다.

이마리 행 승강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마리행 버스는 따로 표를 예매할 필요없이 버스에 오르면 된다고 터미널 매표소에서 알려주었고, 친절하게 시간까지 알려주었다. 매시 1대 정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때 5분정도 남은 버스를 탈 것인지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탈 것인지 결정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배가고픈 탓에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하였다. 하카타 버스 터미널에서 1시간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하카타 버스터미널 32번 승강장에서 이마리행 버스를 탈수 있다. 아침 식사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하였는데, 5천원정도의 가격에 계란과 햄, 낫또와 미소국과 간단한 샐러드가 나왔다. 낫또를 비벼서 밥위에 올려먹었는데, 배가 고파서 그런지 맛있게 먹었다. 반찬없는 일본의 식사에 적응이 되는 느낌이 들기까지 하였다. 
 

944분에 출발하는 이마리행 버스는 약 2시간을 달려 이마리에 도착하였다. 1시간 정도라고 알고 있었던 것인지, 추측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2시간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오늘의 일정이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오늘 방문하려고한 장소 1~2곳은 빼야 할 것 같았다. 이삼평의 도진신사와 이즈미야마 자석장은 반드시 방문하고, 이마리 도자기 박물관과 아리타의 큐슈도자기 문화관은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버스는 대한해협을 오른쪽으로 두고 가라쓰(唐津)를 지나 이마리로 향했다. 가라쓰를 지나면서 가라쓰의 해안가에 유명한 금송군락지와 가라쓰 성이 보였다. 이마리에서 하차한후 우선 아리타행 교통편을 관광정보센터를 방문하여 알아보았다. 아리타행 버스는 없고 기차만 있다고 하였다. 시간이 부족하여 가미아리타로 바로갈까 생각했지만 이마리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아리타역이 종착역이었다. 1230분경 아리타로 향하는 기차가 있어서 50여분의 여유가 있어서 상생교까지 걸으며 주변을 산책하였다.

 

이마리는 아리타 도자기가 수출되던 항구였다. 청나라가 해금정책을 통하여 도자기 수출이 막히면서 중국의 도자기인 차이나를 대신하여 일본의 이마리 자기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오죽했으면 청나라가 유럽에 다시 도자기를 수출하면서 차이나 이마리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고, 독일 마이센에서는 복제품이 생산되기도 하였다. 이마리에서 그런 흔적들을 여기 저기저기서 볼 수가 있었다. 이때 이마리 도자기를 포장하였던 우케요에(일본민화)가 의외의 반향을 불러일으켜서 당시 인상파화가들인 고호나 고갱과 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이마리 역에서 상생교까지의 산책은 불과 20여분만에 종료가 되었다. 점심을 먹기에도 다른 곳을 방문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라 결국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나머니 시간을 보냈다. 이마리까치는 약250엔 정도의 요금이라서 부담이 되진 않았다. 관광 센터의 직원이 친절하게 표를 자판기에서 구매하고 어디에 타야할지 옆에서 알려주어서 어려움은 없었다. 한적한 기차역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시간이 남았지만 플랫폼으로 걸어 나갔다. 자유여행의 장점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질문해야 되고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 확실히 더디지만 패키지 여행이 가지지 못한 장점이다. 딱봐도 현지인과 다른 느낌의 중년 아저씨들이 작은 역에서 어슬렁 거리는 모습은 현지인이 보기에도 특이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기차는 1칸짜리였다. 일본 여행을 할때마다 이렇게 작은 기차로 마을 이곳 저곳을 연결하는 작은 기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일본은 근대화가 되는 시점부터 철도 건설에 엄청난 투자를 하였고 철도 자체가 근대화의 상징으로 받아 들여졌다. 기차가가 서는 작은 역에는 그 지역의 학교 학생들이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그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자유여행 경험이 적은 같이 간 선생님들도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하였다. 기차가 출발한지 20여분후 아리타 역에 도착하였다.

아리타는 한자로 有田이라고 쓴다. 밭이 있다는 것인데,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 이 명칭이 나오게 된 배경을 추측한 내용이 나오는데, 실제로 밭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이 온통 산이라서...그래서 밭이 있다는 명칭을 생겼을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경작지가 엄청 많은 곳이라면 '밭이 있는 마을'이라는 그런말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가미아리타 역 방향으로 가면서 도잔신사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하였다.


가는 길에 백파선 여사의 상과 백파선 카페도 볼수 있었고, 도자기를 판매하는 곳은 많이 보였다. 의의로 저렴한 것도 많아서 딱히 용도를 따지지 않고 이곳에 온 기념으로 하나쯤은 사갈 생각을 하였다. 가는 길에 적당한 식당이 나오면 점심을 먹으려고 하였으나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고 있었고, 편의점도 보이지 않았다. 웬만한 우리 나라의 읍지역의 크기 정도인데 너무 한산했다. 도자기 판매점이 많다는 것 외에는 정말 한적하고 지나다니는 사람하나 만나기 어려웠다. 한국인 여행객은 우리외에 누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잔신사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구글 지도에 의지해서 가긴 했지만 여기저기 안내판과 지도가 잘 되어 있었다. 적당한 식당이 나오면 점심을 먹으려 했지만 도산신사에 도착할때 까지 결국 점심은 먹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도산신사에 가기 위해서 이 계단을 오르면 된다. 계단위는 철길이다. 철길이 흔하지 않은 곳에 사는 나는 이 모습이 이국적이라고 느꼈다. 
 

입구의 돌로된 도리이를 지나면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된다. 좌우의 등이 도자기로 되어 있고, 본당 입구의 도리이가 도자기로 된 것이 이곳이 도자시의 신인 이삼평을 모신 신사임을 알려준다.

이삼평은 충청도 금강 사람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그래서 공주에는 이삼평 기념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추측하기에 이삼평은 일본군에 의해서 포로로 끌려 갔을 것이지만 일본측에서는 일본군의 길안내를 한 이유로 조선에 남을 경우 오히려 신변이 위험할 수 있어서 일본으로 함께 건너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 같다. 일본에 끌려온 수많은 포로들은 고생이 이만저만하지 않았을 것이고, 일부는 사명대사를 쇄환사로 파견하였을 때. 이황의 제자 강항처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일부는 일본의 지방의 사무라이들이 도공들의 기술을 탐하여 조선 외교관이 방문한 동안 일정 지역에 가두어 두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일부는 기술직을 우대하는 일본에 자발적으로 남기도 하였을 것이다. 조선에서는 대우도 받지 못하고 차별받았을 직업이 일본에서는 존중받고 보호받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임진왜란 이후 조선 도공들에 의하여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 중심에 이삼평이 있는 것이다. 이삼평은 애초에는 가나가이 산페이라고 하는 일본 이름도 있었지만 1918년경 이삼평의 비가 세워지면서 원래의 이름인 이삼평이라는 이름을 사용함으로서 일본인들 스스로 아리타자기가 조선으로부터 왔음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본당앞의 도자기로 만들어진 도리이는 1888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일본 신사의 등이나 이러한 도리이는 지역의 유지들이나 개인들이 헌납한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그러한 경우인 것 같다.

 
 
 
 

도조 이삼평 비라고  오벨리스크처럼  도진신사 거의 꼭대기에 위풍 당당하게 세워져 있다. 2015년 1월에  하우스텐보스행 기차안에서  잠시 정차한 사이에 이 비석을 보고 너무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이 비석을 찾아서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 10여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찾아오게 되었다. 

 

비석 앞에는 비석의 유래를 일본어와 한글, 영어로 적혀있다. 아리타의 이즈미야마 백자광을 발견하고 아리타를 중심으로 도자기를 만들어 내면서 일본 도자기 발전의 시초를 이루었다는 내용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어떻게 하여 이삼평이 여기에 끌려왔을까에 관심이 간다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도자기를 발전시킨 점에 초점을 맞춰서 설명하고 있다. 같이 간 분들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비석 앞에서 간단하게 추념의 시간을 가졌다.

 

비석이 있는 도조의 언덕에서 내려다본 아리타. 큰 건물은 없고 작은 집들이 모여있다. 편의점도 찾아보기 힘든 한적한 마을이다. 도자기 관련 행사가 열리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겠지.  사진의 오른쪽 맨 안쪽 즘에 이즈미야마 자석광이 있는 곳이다. 

 

도잔신사를 내려오는 길에 서울에서 온 대학생 단체가 방문한 것을 보고 반가워서 학생들에게 인사하고 대화도 나눴다. 5개대학의 동아리 연합회라고 하는데, 교수님들과 함께 왔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신사의 유래와 이삼평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었지만 교수님들이 함께 왔다기에 그만두었다. 이삼평의 비석은 꼭 보라고만 하고 내려오다 보니, 시간때문인지 전부 신사에만 머물다가 내려오고 있었다. 유후인인나 뱃푸 같은 관광지가 아닌 이곳을 찾은 것은 기특한 일이지만 이왕온거  좀 더 깊이 들여바 보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대학시절 나도 여기 저기 답사를 다니면서 전공자임에도 먹고 노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문화재를 살펴보지 못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이중에 누군가는 느낀바가 있어서 이곳을 다시 찾게 될것이라고 생각 된다.

 

이삼평의 비석을 보고  내려와서 이즈미야마 백자광으로 향하였다. 식당이 있으면 당연히 점심을 먹어야할 시간이었고 배도 고팠다. 그런데 이번에도 열린 식당은 찾지 못했다. 편의점이라도 있으면 삼각김밥이라도 먹자고 하였지만 편의점도 찾지 못했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가는 길에 빵집이 있어서 빵이라도 먹자고 하였다. 사진과 같은 그림이 그려진 작은  빵집은 열려있었지만 주인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결국 백자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빵집에서 빵을 조금 구입하고 자판기에서 음료를 사서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이즈미야마 백자광을 찾아가는 길도 역시 구글지도를 보면서 갔지만 안내판을 따라가도 충분히 찾을수 있었다. 사진의 입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석장신사와 백자광을 찾아갈수 있다. 큰길따라 죽 올라가면 안된다. 

자석장 옆에는 석장신사가 있고 이곳엔 이삼평 상과 고려신 비석이 있다. 흰옷을 입은 모습과 수염난 모습이 전형적인 조선의 선비를 보는 듯했다. 고려신 비석은 글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이끼가 끼어 있었다. 옆에 설명이 없으면 지나치기 쉬울 것 같은 상태다.

 

 

이즈미야마 자석장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이삼평에 의하여 백자광이 발견되어 아리타가 일본 도자기 생산의 중심지역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채굴은 이루어지 않고 있는 듯 하고 문화재로 지정되어보호되고 있다. 입구에는 이삼평이 발견한 자광지라는 비석이 있고, 도공의 비가 있다. 바닥에는 깨진 자기들로 장식되어 있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이곳이 어떤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보통 채석장 같은 곳은 원상 복귀 시키는데 이렇게 기념비적인 곳은 문화재로 남겨 놔도 괜찮은 것 같다. 

 

관람을 마치고 다케오로 가기 위해서 가미아리타(上有田)역으로 향했다. 가는길에 다시 들런 빵집에 주인이 돌아와 있어서 달달한 빵을 각자 하나씩 구매하고 가미아리타 역 앞에 앉아서 열차를 기다리며 요기를 해결하였다. 기차역은 그야말로 간이역이었고 역무원도 없었다. 역앞의 슈퍼에서 기차표를 구매해야 한다. 조용한 기차역 앞의 의자에 앉아서 음료와 구입한 빵으로 점심을 해결할때 이미 시간은 3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다케오로 가는 기차는 그래도 2칸이었고 사람도 많이 타고 있었다. 만약 다케오에 잘 만한 숙소를 구하였다면 다케오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저렴한 숙소를 찾지 못했고, 다케오에서 하카타로 가는 버스편도 확인을 못했다. 기차는 많이 있었지만 산큐패스를 사용해야 해서 고육지책으로 우레시노에서 1박을 선택하였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더 잘짜여진 일정이 되어 버렸다. 우레시노에서 하카타행 버스를 기다리여 족욕을 하였던 아침이 너무 좋았다.  다케오 역에서 내려 우리가 저녁을 보낼 우레시노를 향하는 버스를 타는 위치를 확인한후 다케오 신사까지 걸어서 갔다.  15분정도 걸린 것 같다. 

다케오 신사의 하일라이트는 3천년된 녹나무이다. 3천년이 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 고조선이나 초기 국가때부터 있었다는 것 아닌가? 믿기지 않는다. 이 녹나무는 토토로에 영감을 주었다고 알고 있다. 그 토로로가 사는 나무가 바로 녹나무이다. 수업시간에 일본의 목조미륵보살 반가사유상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이 시기 일본의 목조각은 주로 녹나무로 이루어지지만 이것이 적송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봐서 한반도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는 내용의 수업을 하기도 하였다. 이 사진을 관련 내용 수업을 할 때 자료로 사용할 생각이다. 제주도에도 녹나무가 많긴 한데 이렇게 규모가 큰 녹나무는 그 자체로 신으로 모셔질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나무 입구에는 계단이 보인다. 과거에는 그 계단을 통하여 제도 올리고 한 모양이다. 그리고 다케오 신사 입구에는 부부 나무가 있다. 두그루의 삼나무가 연리지로 연결된 나무인데, 그때서야 2017년경 형님들 가족과 왔을 때 방문했었던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케오 신사 앞에는 다케오 도서관이 있다.

 

 다케오 도서관은 건물 자체도 멋 있었고 내부 풍경도 앉아서 책을 펼쳐보고 싶을 만큼 시원하게 뚫린 공간이었다.  안에는 스타벅스도 있었다. 단체 여행을 온 팀이 이 도서관에서 줄을 서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다케오 역으로 돌아와서 우레시노행 버스를 탓다. 시내버스라서 그런지 여기 저기 자주 섰고 가는 동안에 어둠이 내려 우레시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땐 6시30분이 넘은 시간이었다. 다행히 숙박을 예약한 관광호텔이 가까웠고 짐을 푼후 저녁을 먹으로 나왔다. 그런데 웬일. 대부분의 식당이 모두 문을 닫은 상태. 우레시노의 온천 두부로 저녁을 먹으려는 계획은 포기하고 마트에서 사온 초밥으로 저녁을 먹고 온천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일본의 3대 미인온천이라고 하더니 물의 온도가 높진 않았으나 미끌미끌한게 거창의 가조 온천이 생각났다.  여긴 미인 온천이라 남자들은 해당사항 없다면서 일찍 방으로 돌아와서 남아 있는 음식들을 먹고 속이 불편한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후쿠오카로 가는 버스를 11시30분경에 예약해둔 상태라 늦게까지 자고 천천히 움직이자고 했지만, 연세 탓인지 모두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한번더 온천을 하고 전날에 사온 샌드위치로 아침을 대충 해결했다. 원래 계획은 호텔에서 조식을 먹는 것이었는데, 미리 예약을 안했더니, 조식 제공이 안된다고 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첫날 하카타 버스터미널에 먹은 아침에 사실상 유일한 식사였다. 먹는 것을  아껴서 그런지 돌아갈때 환전해온 엔화가 너무 많이 남아 버렸다. 일찍 방을 정리하고 나와 짐을 호텔에 맡겨 둔후 우레시노 산책에 나섰다. 토도로기 폭포를 갔다가 토요타마 히메 신사(메기 신사)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토도로기 폭포까지는 우레시노 버스터미널 기준으로 걸어서 15분에서 20분정도 거리였다. 전날엔 더위를 느낄만큼 화창했는데, 아침엔 적절하게 차가운 공기에 걷기엔 상쾌하였다.  온천 두부로 유명하다고 하더니, 아침에 여기저기서 두부 만드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폭포의 규모는 크지는 않았고, 폭포 주변엔 우레시노 올레길 표시가 있어서 그 길을 따라 걷기도 하였다. 교통안전을 비는 부동명왕 상이 있었는데, 토도로키의 한자가 車를 3개로 표시되어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메기신사도 걸어서 오래 걸리진 않았다. 메기신사 라니..생각해 보니 메기 피부가 매끈매끈한게 이곳 온천에서의 촉감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메기 신사에는 메기 신사의 효능을 한글로도 설명해 놨는데, 메기님은 아름다운 피부를 갖게 해주는 신이라고 되어 있었다. 일본 신사에 참 다양한 신들이 있지만, 유후인에서 보았던 우나기 희메 신사(뱀장어 신사) 처럼 진짜 진심으로 신으로 섬기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메기 신사 근처에 족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근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마시면서 족탕을 하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여행 기간중 가장 한가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특이한 것은 증기로 족탕으로 하는 것이 있어서 다른 곳에선 보지 못한 것이었다. 다들 족탕을 하니 전날 3만보에 가까운 여정의 피로가 좀 풀리는 기분이라고 하였다. 

 

 하루 4번 정도가 있는 하카타 버스 터미널행 고속버스를 11시 40분경 타고 하카타로 이동을 하였다. 버스를 기다리며 서울에서 온 모녀 여행객을 만나서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저녁은 슈퍼에서 초밥을 사서 먹고 아침은 샌드위치를 먹었다고 하니, 자신들은 료칸에서 대접 잘 받았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약간 안스럽게 생각하시는 듯도 하였다.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하셨다는 어머니와 현직 중등 교사라는 따님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전에 좌석을 예약하며 좌석을 지정하고 현장 결재로 선택해두었고, 산큐패스를 기사에게 보여준후 예약한 버스에 올랐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있었는데 애초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고속도로에 오르고 나서 안내 멘트에 휴게소에 한번 방문한다기에 일본 버스를 타고 가다 휴게소에 들런적이 한번도 없어서 다른 동료들이 잠들어 있었지만 혼자 내려서 화장실에도 들러고 천천히 커피도 한잔 뽑고 있는데, 그 때 기사가 빨리 버스 타라고 한다. 헐..5분도 안된것 같은데..그제서야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뛰어가던 일본인 청년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그야말로 화장실만 다녀와야 하는 시간. 그러고 보니 다른 일본 버스에서 보이던 화장실이 이버스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커피 자판기에서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50부터 카운터 되는데...머리가 땀이 날려고 하였다. 커피를 가지고 버스에 오르자 버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출발. 진땀나는 순간이었다. 나를 두고 가진 않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일본인들의 행동 방식을 일본에서는 최소한 실천하려 했는데.... 

처음 계획은 하가타 버스 터미널로 가서, 다시 다자이후로 가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후쿠오카 공항에서 다자이후 행 버스를 타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공항에서 하차하였다.  다자이후 방문 목적은 근처에 '수성'이라는 곳이 있는 데 그곳이 삼국통일 전쟁때 백강전투에서 신라에게 패한 왜와 백제 연합군이 구축한 산성이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중 교통으로 접근이 어렵지만 차창으로라도 보고, 다자이후에 매화라도 볼 생각이었지만, 큐슈국립박물관에서 가야 특별전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주요 목표가 변경되었다. 덕분에 산큐패스도 애초 구입비보다 많은 버스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후쿠오카 공항 바닥에는 가고싶은 방향의 버스를 탈 수 있도록 바닥에 표시되어 있어서 여기에 줄을 서면 된다. 직원들이 안내도 해줘서 어려움은 없었다. 버스에서 구글 지도를 보고 가다 대충 저기 어디쯤이 수성터가 있을 것이라 여기고 사진을 찍었다. 

 

다자이후 텐만구 앞에서 점심을 먹었다. 거의 2시가 다된 시간이었다.  눈에 보이는 아무곳에 들어가서 먹었는데 1인당 1천엔 정도로 잘 먹었다. 특히 많은 양은 아니지만 명란젓을 밥위에 올려 먹으니 밥맛이 꿀맛이었다. 晩食當肉(늦게 먹는 식사에는 당연히 고기맛이 난다.)는 말처럼 배고픈 상태라서 그럴수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일행들 모두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당 벽에는 가야 특별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기도 하였다. 큐슈 국립박물관은 다자이후 텐만구 바로 옆이라서 찾아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몇 번 와봐서 흥미 없이 신사를 대충 들러보고 난후   박물관으로 향했다. 특별전 관람료가 1인당 1만 7천원 정도였다. 여행중 우리가 쓴 돈중에서 가장 비싼 돈이 되어 버렸다.  

 

 큐슈 국립 박물관에는 상설 전시장에도 한반도와의 관계를 살펴볼수 있는 전시물들이 있지만  일본에서 보는 가야 문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살펴보았다. 유물은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빌려온 것이라서 많이 본 유물들이었다. 혹시 임나일본부설을 상기시키는 내용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그런 언급은 없었다.  가야의 문화를 소개하고, 일본의 왜 문화에 끼친 영향, 초기 벼농사와 말과 소같은 가축의 전래와 도래인 문화의 전파를 다루고 있었는데, 도래인들의 문화가 잘 수용되고 화합하여 지금의 일본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그런 내용의 전시회였다. 문득 생각해보니 한반도의 고대 문화가 일본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 통신사가 일본 유학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이런 것에 촛점을 맞추어 한일 관계를 보려는 우리의 태도를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협력, 교류, 평화 이런 내용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겠다. 가끔 한일 관계의 모델을 왜란이후 조선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 과정과 교류 과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가야 특별전을 보는 동안 같이 여행 오신 분들이 급 체력 저하를 느꼇는지  어디가 아프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서둘러 마무리하고 다시 하카타로 돌아오는 버스를 탓다.  나카스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밤을 보내며 캐널시티 등에서 쇼핑을 좀 하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먹는 것을 너무 저렴하게 먹어서 막판에 엔화가 너무 많이 남아 쓸데없는 과자 같은 것을 너무 많이 사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좀 더 역사에 대한 안목과 관심을 가지고 깊이 탐구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