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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서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다.

- 2016 2월 방문

 

대마도는 여행지로서 우선순위로 고려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 전공자로서 다녀와야할 의무감 같은 것도 있었고, 내가 보수주의자의 표상이라고 생각하는 최익현 선생의 흔적도 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2016년 분회연수를 대마도에서 진행하기로 하고 일을 추진하면서 대마도 방문의 기회가 찾아왔다. 후쿠오카를 가는 배위에서 멀리서 쳐다보면서 이렇게 '부산에서 가까운 저 섬이 어떻게 일본 땅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냉정한 현실은 일본땅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히타카츠까지 49km에 불과한 거리지만 '대마도가 우리땅'이라고 주장하기에 역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하지만 우리와 일본의 교류 역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 대마도를 통하여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현재를 고민해 볼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 대마도이다. 

 

1. 새로지은 부산국제여객터미널

2015년 8월에 문을 연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은 확실히 업그레이드 된것 같다. 얼마전까지 중소도시의 버스터미널 같은 느낌보다는 확실히 공항터미널의 느낌에 가까워졌다.

 

2. 쾌속선 비틀을 타고

 

 출발당일인 2016년 2월 15일월요일은 2-3일전부터 내린비로 일요일부터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아졌다. 출발 하루전 여행사로부터 회항하거나 취소될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일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동안에 8시 출발하는 이즈하라항행 코비의 취소소식이 전해졌고 장내가 술렁거렸다. 다행히 우리가 가는 9시출발하는 히타카츠행의 배는 8시35분이 되자 정상 수속이 시작되었다.

 

비틀호 승선후 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중 2명이 특실 업그레이드의 행운을 누렸다. 우째 이런일이...그런데 돌아오는 길에는 이즈하랑 출발의 코비가 결항되면서 다시 히타카츠로 돌아와 비틀에 이용하였는데, 일행 전원이 특석으로 업그레이더...대박! 특실에서는 커피,아사히 맥주, 녹차 중에서 하나를 무료로 마실수 있고, 하선시 우선권이 부여된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가격차이는 1만원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우리는 이런 행운을 마음껏 즐겼다.

 

3. 첫날, 히타카츠 항에서 이즈하라까지...

 

  9시에 출발한 비틀호는 높은 풍랑으로 예정보다 10분 늦은 10시 20분에 도착하였고, 후쿠오카에 비해서 엄청 빠른 속도로 수속을 마쳤다. 히타카츠항은 우리 나라의 웬만한 어촌 규모 정도로 큰 편의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최단 기간에 올수 있는 일본땅이다. 하지만 첫 인상은 일본은 일본이였다.

 히카카츠 항구의 모습, 외만엔 높은 파도로 여객선들이 결항되고 있었지만 내만은 잔잔했다.

 

 

히타카츠 항을 출발하여 첫번째로 방문한 곳...아니 지나간 곳은 러일 전쟁 당시 패배한 러시아 군대중 일부가 쓰시마에 표류하자 일본인들이 성심껏 치료해주었고, 이를 기념하는 조각과 공원이다.

 

그리고 찾은 곳은 일본 해수욕장 100선에 뽑혔다는 미우다 해수욕장이다. 손바닥만한 작은 해수욕장이지만 고운 모래가 인상적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해수욕장의 왼편으로 캠핑장도 있었고, 왼쪽의 작은 산길을 따라 걷다보니 이미 동백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전국적인 한파에 대마도도 영하의 기온이었지만 그동안 따뜻했던 흔적이 나무와 식물들에게 남겨져 있었다.

미우다 해수욕장의 하일라이트 바위섬. 사진을 아내에게 보내니 '섬인줄 아는 바위'라고 말했는데 그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날물때에는 육지가 되고 들물에는 섬이 된다. 육지 이면서 섬이기도 하고, 바위이면서 섬이기도 한.... 이런 존재들이 우리에게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한쪽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미우다 해수욕장을 벗어나 10여분을 가서 대마도의 북쪽 끝, 한국 전망대에 도착했다. 올라가는 길이 좁아서 내려오는 버스에 두대의 버스가 뒤로 물러섰다가 겨우 올라섰다.

 

멀리우리의 남해 바다 건너 부산이 보인다. 이정도 뚜렷하게 보이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한다. 태종대에서 대마도를 보기위해 망원경에 돈을 넣었다가 몇 번 실패한 기억이 있는데, 이곳 대마도에서 부산을 본다. 부산에서 우리가 왔는데, 부산을 신기하게 보다니... 앞에 보이는 건물들은 일본의 해상 자위대이다.  둥근 레이다로 우리의 남해를 바라보는 일본의 자위대.

 

고려시대 공도 정책과 별달리  생산되는 것이 없는 척박한 섬이기에  섬이 비워진 틈을 타서 무역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왜인들이 자연스럽게 중간 기착지로서 이곳에 들어오면서 조선시대의 기록처럼 어느 순간에 왜인들이 사는 섬이 되었다. 만약 고려시대 우리가 정착하고 관리를 하면서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수군을 배치했었다면 임진왜란이 어떻게 되었을까? 또 러.일 전쟁은 어떻게 되었을까?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역사이다.

조선 통신사 위령비 1703년 조선역관 108명과 쓰시마 번사 4명이 탄 배가 이 앞바다에 침몰하여 전원사망하였는데, 이를 기리는 비석으로 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이 당시 기록된  필체 그대로 새겨져 있다.

 

 

한국 전망대 주차장에서 일본인 부부가 문어빵(다코야끼)를 팔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모두 15명이라 8개씩 든 것을 두개 사서 하나씩 맛을 보았다. 오사카에서 먹었던 것 보다는 훨씬 덜 짜서 먹을 만 했다. 그런데 계산할때 실수로 천엔을 건내면서 환전한 빳빳한 새돈이다 보니 천엔 뒤에 만엔 짜리가 붙어서 건내졌다. 돌아서는 나를 부르더니 만엔을 웃으면서 돌려준다. 그리고 서비스라면서 사탕 몇개를 나의 손에 쥐어준다. 이런 면에서 일본인들은 대체적으로 믿을 만 하다.

우리는 다시 히타카츠 항으로 돌아가 이른 점심을 먹었다. 어차피 아침을 김밥 한줄로 넘겼기에 이른 점심이 오히려 반가웠다.

 

 

와타즈미 신사를 지나 차는 비탈길을 올라갔다. 그리고 대마도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는 에보시카게 전망대에 도착했다. 대마도에서 여행코스는 등산과 낚시를 제외하면 코스가 똑 같아서 배에서 내린 단체여행팀들은 거의 하루종일 같은 코스를 다지면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이동한다. 우리는 다행히 다른 팀보다 항상 10여분 빨리 도착하여 사진 찍는 것에서 많은 이점을 볼 수 있었다.

에보시카케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마도는 머리속으로 그리는 것보다 훨씬 크고 섬이 많았다. 100여개 이상이 섬이 있다고 한다. 세종 때 이종무가 대마도 원정을 와서 대마도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이유도 복잡한 지형과 무수한 섬과 깊은 산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의지가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전망대에서 대마도 사람들도 보기 힘들다는 거제도를 우리는 볼 수 있었다. 버스 기사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한참을 거제도를 보면서 대화를 주고 받고 한국 사람들에게 보기 힘든 광경이라면서 손으로 거제도를 가리켰다. 고대 사회에서 항해술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 눈으로 방향을 잡아서 배를 몰았을 것인데, 일본에서는 보이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빤히 보이는 대마도를 일본에게 내어준 것이 다시한번 아쉬울 따름이다.

 

여행 당일은 영하의 기온에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그동안 따뜻했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진달래가 피어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진달래가 새파랗게 질려보인다.  에보시다케 전망대의 주차장 쪽의 전망대, 망원경은 공짜로 볼 수 있다.

 

에보시타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와타즈미 신사의 모습이다.

와타즈미 신사의 도리이는 멋진 사진의 모습을 만들어 준다. 앞의 밝은 색의 도리이는 태풍 매미가 왔을 때 파괴된 것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 신사에서 현재 일본에도 드물다는 신사에 있는 스모 경기장이 남아 있다. 원래 스모가 신사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였다고 한다. 스모는 일본 문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데, 삿빠가 있는 우리나라 씨름과 삿빠가 없능 몽골 씨름을 교묘하게 결합해 놓은 형식이다. 체급이 없는 관계로 우리가 알고 있는 거구의 사람들이 씨름을 하게 된 것이고, 一期一會의 정신에 따라 단판 승부다. 그리고 여자들은 스모 경기장에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오사카와 큐슈 지역에 모두 7번 정도 방문했고 그 때마다 신사를 보았지만 이렇게 스모 경기장이 있는 신사는 처음이었다.

 

이외에도 이 신사에서 소나무와 길게 용처럼 뻗은 소나무의 뿌리가 인상적이었으며, 고로케를 파는 노점이 있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유후인의 금상고로케보다 맛이 있는 듯...금상 고로케는 너무 인기가 좋아서 만들어 놓은 상태의 것을 받다 보니 식은 상태였지만 이 고로케는 막 튀겨내어서 바삭하니 맛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1. 우리 동네 고로케 2. 아타즈미 신사 고로케 3. 금상고로케..... 의 순이다.

만관교(만제키)는 대마도를 상,하 대마도로 구분하는 기준점이 된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운하이며 러.일 전쟁 당시 요긴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다리 아래로 세차게 바닷물이 지나가고 있었다. 뉴질랜드의 후카 폭포가 생각날 만큼 꽤 빠른 물살이었다. 남쪽 대마도의 휴게소에는 구들장으로 지붕을 올린 특이한 휴게소가 있는데, 사연을 잘 모르겠다.

 

만관교를 보고난후 유리랜드 온천을 갔다. 여행후기에 작은 온천, 동네 목욕탕 수준...뭐 이런 글들을 보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차가워진 날씨만큼 뜨끈 뜨근한 온천 탕은 몸과 마음을 릴렉스 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우나도 저온과 고온 사우나 두개가 있어서 취향에 맞춰 즐길수 있었다. 온천 물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지난주 목욕탕을 빼먹은 탓인지 의도하지 않게 팔과 다리 몸에서 떼가 밀려서 떼 수건 없이 떼를 많이도 밀었다는.....

 

온천후 가이드가 일정에 문제가 있음을 급하게 알려왔다. 다음날 이즈하라 항에서 출항 예정 코비가 취소되면서 다시 히타카츠로 돌아거서 비틀을 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중에 몇몇은 그냥 하루 더 머물러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여행사는 아주 발빠르게 조치를 취했다.

 

최익현의 순국비가 있는 수선사로 향했다. 수선사와 숙소와 저녁 식사 장소가 서로 가까워서 걸어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수선사의 최익현 순국비는 이번 여행에서 꼭 보고자 했던 곳 중의 하나이다.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보수주의자 최익현 선생은 진정한 선비로서  왕에게 목숨을 걸고 대원군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을사 의병을 일으켰고 그 죄로 대마도에 유배와서 일본이 주는 음식을 거부한 끝에 순국하신 분이다. 

 

일본의 땅을 밟지 않겠다고 신발의 바닥에 흙을 깔고, 일본의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단식하시다가 순국하신 우리 유학자의 표상이다. 일본 과의 통상 조약을 반대하여 도끼를 품고서 상소를 올리다가 흑산도로 유배되었고, 대원군은 탁핵하고, 을사 의병을 일으켰던 최익현 선생은 동학 농민군을 폭도로 취급하는 전형적인 조선 양반의 계급 의식에서 빠져 있었지만 조선 유학자의 표상으로 불릴만한 분이시다. 일본의 패망을 예측하기도 하셨던 최익현 선생의 기상을 기리는 비가 대마도에 있다.

 

수선사를 보고 난후 바로 근처에 숙소인 천냥민숙이 있어서 걸어서 이동했다. 민숙의 문열 열었던 동료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와 무슨 일인가  가보았더니 대표자이 본인의 이름을 민숙 주인이 그려놓았다.

 

민숙의 시설에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따뜻했고, 방도 넓었다. 카라 사진이 눈에 확 띄었고, 남녀 구분되는 샤워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남자이고 민숙집에 우리 외에는 손님이 없어서 게의치 않았다.

 

민숙집에서 짐을 푼후 근처의 식당에서 대마도식 바베큐로 저녁을 먹었다. 먹음직 해 보이지만 달랑 소스 하나에 찍어 먹고 반찬도 단무지 짱아지 조금, 거기에 상추는 무엇으로 맛을 내면서 싸먹으란 말인지... 된장, 김치 생각이 간절했던 저녁 식사였다. 사실 가이드의 조언으로 부산항에서 김치를 조금 구매했는데, 동료 중 누구의 가방속에서 잠자버렸다. 그렇게  대마도의 첫날이 저물었다. 우리는 마트에서 술과 안주거리를 준비해서 10시경까지 숙소에서 놀다가 빠져나와 철판위에서 요리를 해 먹을수 있는 사케집에서 생맥주와 사케를 마시면서 눈발이 날리는 대마도의 밤을 보냈다.

 

3. 둘째날 이즈하라 주변

 

아침에 일어나 민숙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었다. 누군가의 가방에서 잠자던 김치를 꺼내서 아침 식사에 활용하니 목이 덜 맥히는 것 같았다. 가이드와 약속한 시간에 만나서 도보로 이동하여 반쇼인으로 향했다. 눈발에 날리고 바람도 제법 세게 불어서 차가웠지만 하늘은 맑아서 정신이 깨이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이번 대마도 여행의 하일라이트였다. 대마도 도주의 비석과 무덤이 있는 곳으로 한반도와 조선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장소였다. 왜인들이 사는 땅이었지만 조선과의 교류 없이 살아 남기 불가능했던 대마도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었다. 대마도의 19대 번주의 아들이 세운 절로서 조선 국왕이 하사한 삼구족인 화병과 촛대 향로가 전해지는 곳이다 19대 번주인 소오 요시토시는 조선에 토요토미의 침략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알렸던 번주이면서 동시에 임진왜란때 출병했던 번주였다. 어느것이 진짜의 모습인지는 알수 없지만 이곳에 대마도와 한반도의 교류의 중요한 지점임에는 틀림 없었다.

 

반쇼인의 돌계단 탄성이 나올 만큼 멋진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대마도 번주들의 무덤이 있다.

 

큐슈지역의 신사 등에서 보았던 것 처럼 이곳에서도 삼나무가 무척 인상적이다. 특히 큰 3개의 삼나무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소원을 빈다고 손으로 비벼서 맨들 맨들 했다.

 

대마도 번주의 무덤, 우리 나라 절의 '승탑'처럼 보인다. 번주의 무덤 앞에서는 후대에 세긴것으로 여겨지는 조그만한 비석이 있다.

 

 

조선 국왕이 하사한 삼구족, 우리 나라의 박물관에서도 이렇게 멋진 화병 촛대 향로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나마 2차 대전중에서 대부분이 전쟁 물자로 징발 당하고 남은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의 공예 기술의 우수성이 여기서 볼수 있다니... 아이러니다.

 

조선 통신사비는 박물관 앞에 있다. 반쇼인, 덕혜옹주 봉축비, 조선사통신비, 쓰시마 박물관이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좋았다. 좋은 길을 걷는 것이 여행에서 가장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된지 오래다.

 

이곳은 대마도의 옛 항구이다. 벚꽃이 피면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고, 우리 나라 드라마 '일지매'에도 나왔다고 한다. 이런 흔적은 특히 우리 나라에서 흔하지 않아서 귀한 곳이라 여겨진다.

 

추가글) 2023년 2월. 펜데믹 기간동안 대마도 가는 길도 닫혀있었는데, 최근에 다시 열린것 같다. 대한민국이 없으면 지금도 대마도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에 빠질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당시에도 만들어진 호텔, 온천은 거의 한국인을 겨냥한 곳이었다. 관광지로서는 기대할 바가 없다 하더라도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가야할 곳인것 같다. 우리와 일본의 교류, 러.일전쟁, 덕혜옹주와 소다케유키의 결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