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3
천년 고도 경주 최고의 장소는 뭐니 뭐니 해도 남산이다. 그냥 눈에 보이는 등산로만 따라 올라가도 수시로 나타나는 부처님과 탑, 울퉁 불퉁 바위도 하나 하나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남산, 그러나 높지 않아 정겹고, 누구에게나 접근을 허용하는 산이다. 이번에는 문화답사반 동아리 학생들을 인솔하여 남산 종주를 시도하였다. 지난 가을 방송된 1박 2일 경주 남산이 소개되면서 아이들도 남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로 1박 2일 코스와 유사하게 남산 종주를 하였다.
아침 8시 30분에 경주행 시외버스를 창원에서 탓다. 그동안 1년에 2-3차례 이상은 경주를 방문해 왔지만, 처음으로 시외 버스를 타고 남산을 찾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해마다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경주의 시외 버스 터미널은 한 20년전의 중.소 도시 시외버스 터미널 풍경 그대로였다. 뭔가 경주의 역사성을 보여 줄만한 그런 공간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배낭을 메고 여행을 온 외국인들도 눈에 보였고, 수많은 젊은 이들이 경주를 시외 버스 터미널 주변에서 경주 여행 계획을 세우며 삼삼 오오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남산의 등반 계획은 배리 삼존불 => 삼릉 => 목없는 석불 좌상 => 마애관음보살상 => 마애선각육존불 => 선각여래좌상 => 석불 좌상 =>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 => 상사암 => 용장사 삼층 석탑 => 용장사터 석불 좌상 을 볼 계획을 세웠다. 상사암 뒷편의 바위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 이 코스는 수차례 다녀간 코스지만, 처음에는 꼭 하나씩은 놓치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날인가는 마애관음보살상을 놓치고 가기조 하고, 마애선각여래좌상을 놓치고 가기도 하였다. 이번에는 놓치는 것 없이 꼼꼼히 보고 오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시간을 단축 시키기 위해서 택시를 탔다. '배리 삼존불'로 가자고 했더니, '네 알겠습니다!'고 했던 택시 기사가 잠시후 되물었다. 남산에 있는 배리 삼존불 말이지요? 하고..네, 포석정 바로 다음이 배리 삼존불 이지요. 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였다. 혹시 싶어서 '지금은 그곳을 삼불사'라고 부르나요? 라고 물었더니, 아...네 맞습니다. 삼불사면 어딘지 압니다. 라고 하였다.
아마도 택시 기사들은 부처님 오신날 불공을 드리러 가는 사람들을 태우다 주면서, 삼불사 라는 이름에 더 익숙해 있는 듯 했다.

배리 삼존불상은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가운데의 석가여래상과, 좌,우의 협시불로 이루어져 있다. 좀 오래된 사진속의 부처님은 전각이 없이 서 있는 모습의 사진이 많은데, 전각이 세워진 것은 꽤 오래되었다. 서산마애불 처럼 웃는 모습이 시간마다 다르다고는 말을 들었지만, 빛이 닿지 않아 부처임의 그런 신비한 모습이 많이 반감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렇게 전각을 씌워두지 않는다면 비 바람의 풍화 작용에 부처님은 훼손이 점점 심해 질 테니 어쩔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가운데 여래불의 웃는 모습은 영락 없는 서산마애불의 웃는 모습과 유사하다.

가운데의 석가 여래불, 세상에 두려움이 없다는, 시무외인과 소원을 들어 준다는 여원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전각이 씌워진 탓에 미소는 많이 희미해 졌지만, 불상의 보호를 위하여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지명인 '배리'라는 명칭은 절을 하는 마을 이라는 뜻인데, 유렴이라는 재상이 부모의 제삿날에 소개 받은 어떤 스님을 소개 받았는데, 행색이 초라하여 이 스님을 업신 여기다, 화가난 이 스님이 소매자락에서 사자를 꺼내어 타고 사라져 버리자, 이 재상이 용서를 빌며, 밤새 절을 하였다고 하여 배리 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전설이 아니더라도 남산을 등반하며 부처님이 있는 자리에서 멀리 바라보면 넓은 배리의 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신라의 곡창 지대였을 이곳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밀레의 그림 '만종'처럼, 농사가 잘 되게 해 달라고 이 남산의 부처님들을 향하여 절을 하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배리 삼존불상을 뒤로 하고, 밑의 화장실 앞으로 난 길을 따라서 삼릉으로 향하였다. 사실상 남산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 삼릉에서 등산을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이 삼릉계는 입구에 있는 3개의 왕릉때문인데,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신라의 왕족중에서 박씨 성의 왕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아달라왕은 신라 초기의 왕이고 신덕왕과 경명왕의 무덤은 신라말의 왕인데, 같은 곳에 묻혀 있는 것도 의심이 가는 바이지만, 무덤의 양식도 3무덤 모두다 호석이 없는 양식이다. 우리가 흔히 통일 이전 신라의 왕릉엔 호석이 없고, 통일 이후엔 호석이 있다고 하는데, 이 원칙에 맞춰봐도 신덕왕와 경명왕의 무덤은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하다. 오래전 들은 이야기로는 경주 박,석,김 이 세성의 종친회에서 임의적으로 무덤을 구분하였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이 세개의 왕릉이 알려진 것과 다를 것이라는 강한 의심을 가질수 밖에 없다.

이 삼릉은 무덤보다 오히려 주변 소나무 숲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경주 지역 특유의 소나무숲인 자유 롭게 자란 소나무들이 모습은 안면나 금강산에 있는 쭉쭉 날씬하게 뻗은 소나무 숲과 대비되는 멋이 있다.

삼릉을 뒤로 하고 잘 만들어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목잘린 불상을 만날 수 있다. '목잘린 불상'은 현재 남산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 시대 이후 훼손된 불상과 불탑들, 신령한 산이라고 여기 저기 만들어진 수많은 무덤, 박정희 정권 시절의 남산 성역화 사업으로 정상까지 만들어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넓은 도로... 문화 유산의 보고 이면서 동시에 역사 속에서 그 만큼의 훼손이 이루어진 남산의 모습을 첫번째 만난 이 불상이 몸으로 말해준다.

이 마애관세음 보살상은 남산을 찾는 사람 중에서 10에 7-8명은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 같다. 남산에 처음 찾는 사람들은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으면 놓치게 된다. 목잘린 불상 왼쪽편의 작은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양지바른 곳에 넓은 배리의 들을 바라보는 관세음 보살상이 있다. 빨간 입술에 호리병을 든 모습이 정말 예쁘다.

남산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선각육존불. 바위를 다듬지 않고 그 위에 육존불을 새겼다. 이 불상에는 현세와 내세가 동시에 표현되어 명확하지 않은 내세를 보여주며, 수행하기 나름이라는 철학적 의미가 숨어 있다. 이 육존불에서 바로 왼쪽 큰 길로 올라가면 빠르게 정상에 올라 갈 수 있지만 남산의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이 선각 윤존불 뒤로 올라가서, 전각을 세운 흔적과 바위 위에 세긴 배수로를 보고 난후 그 위로 올라가야 나머지 부처님을 만 날 수 있다. 같이 답사한 학생이 '이전에 아빠와 왔는데, 이런것 하나도 못봤는데요!' 라고 하던데, 등산로를 따라 가다보면 그런 일이 벌이질 것이다.

선각여래좌상 이다. 문화재를 좀 보아온 사람이라면 이것이 고려시대 불상임을 금방 알수 있다. 남산에 있는 다른 불상들에 비하여 현저하게 조형성이 떨어진다. 1박 2일에서 유홍준 교수는 의도된 조잡함 이라고 했지만, 가끔 '불상을 바라 보았을 때, 좀 불상해 보이면 고려 시대 것이야' 라고 아이들에게 농담 삼아서 말하곤 했다. 나는 그냥 지역적 특색의 반영이라 말 하고 싶다.
선각 여래 좌상을 보고 난후 오른쪽의 좁은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석불 좌상을 만날 수 있다. 몇 년전만 해도 얼굴에는 시멘트가 발라져 있고, 광배는 무너져 두 동강이 나 있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광배도 세워져 있고, 얼굴 주변을 수리한 상태다. 전에 시멘트가 코에 발라져 있을 때만 하더라도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수리하긴 했지만 부처님의 위엄은 그렇게 없게 느껴진다. 배터리가 왔다 갔다 하면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상선암 마애석가여래좌상, 상선암을 지나 조금 위에 가면 있는 또 하나의 걸작, 상선암에서 물을 마시려고 했으나 겨울이라 물이 말라있었다. 상선암에 올때 마다 느끼는 것인데, 상선암은 좀 불친절한 암자라는 생각이 든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좀 쉬고 싶으나 앉지 못하게 하고, 쉴만한 공간도 없다. 그냥 물한잔 하고 지나쳐서 마애석가여래불 앞에서 쉬는 것이 상책이다. 마애석가여래좌상 앞에는 넓은 공간이 있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곳이다. 이 부처님은 얼굴은 돋을 새김을 하였지만 내려올 수록 선각이다. 절선속의 남산의 많은 신들이 바위에서 나오고 바위 속으로 사라진다. 이 부처님은 지금 바위에서 나오려 하는 것인가? 바위로 들어 가려고 하는 것인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부처님이다.

상선암 마애석가여래좌상 앞에서 바라본 배리의 모습이다. 배리 즉, 절을 하는 마을이라는 의미가 잘 나타난다. 고단한 농사일을 하던 농부들이 하루가 저물때 이 남산의 신들을 향해 절을 하지 않았을까?
마애여래좌상을 뒤로 하고 올라가면 정상이 코 앞이다. 능선 부분에서 오른쪽 방향이 금오산 정산 부근이지만 왼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넓은 거북 바위가 나온다. 이곳에서 남산 시내를 조망하고 난후, 상사암으로 향하였다. 어느 나이 많은 노인이 어린 처자를 사랑하였다는 전절이 있는 바위이다.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형상을 보여주는 상사암 뒷편에 양지바른 공간이 있고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오른편으로 보면 상사암 마애여래좌상이 보인다. 마애 여래좌상의 모습이 가장 의미있고 멋있게 보이는 자리이다. 점심을 먹은 후 용장사로 향했다. 금오산 정산을 지나고 남산 일주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가 용장사 방향으로 내려갔다. 용장사 방향의 등산로는 좀 험하다.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것도 있고, 바위 사이를 아슬 아슬 하게 지나가야 하는 곳도 있다.

용장사 3층 석탑. 이 탑은 전형적인 신라 3층 탑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기단부가 자역석이라서 남산을 기단으로 삼아 만들어진 탑이라고도 한다.

용장사터 석불 좌상이다. 대좌의 모습이 인상적인 석불이다. 신라의 대현스님이 염불을 하며 주위를 돌때 이 부처님도 같이 돌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불상 바로 뒷편, 사진의 오른쪽에 놓치고 가기 쉬운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퍼져나가는 듯한 광배의 모습이 인상적인 부처님이다.석불좌상의 특이한 모습이 눈팔다가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있다.
이번 남산 등반은 좋은 날씨에 모처럼 학생들을 인솔하고 진행된 답사였다. 배터리 방전으로 사진을 잘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시간 관계로 신선암 방향으로 가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의미 있는 답사였다.
추가글) 2022년 2월.
2012년 겨울방학때 역사동아리 제자들과 함께 남산을 찾았을 때 쓴 글이다. 그 때 답사를 함께한 한 제자는 지금 역사교사가 되었다. 역사교육과에 진학하여 과에서 남산 답사를 갔을때 내가 인솔한 코스와 똑 같다면서 저녁에 전화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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